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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de a bicycle

두음리 계곡

by 변기환 2012. 7. 29.

휴가 온 동생, 사촌과 새벽까지 막걸리, 맥주, 보드카들 섞어 정신없이 달렸다. 다음날 동생 성화에 몇 시간 못 자고 일어나 식전에 밭에 가서 자두 좀 따고 나니 술이 안 깬다.


술도 깨고, 몸도 풀 겸 자전거로 몇 년 전 다녀온 두음리를 다녀와야겠다. 마침 집사람과 처가 식구들이 두음리에 가 있으니 점심도 해결하고...


산 높고 물 맑은 봉화군에는 깊은 골짜기가 많다. 소천 구마계곡, 대현리 백천계곡, 석포 반야계곡, 춘양 참새골, 석문동 등...


다른 계곡은 수해복구, 대비한답시고 물 흐름을 방해하는 돌을 다 골라냈고 둑을 시멘트로 처발라 수로를 만들어 놨는데, 이곳은 주민 대부분이 안식 교인들이라 자연보호 인식이 높아 수년 동안 별로 변한 게 없다.


믿기 어렵지만, 이 오지에 한의원이 있다. 4년 전 TV 인간극장에서 이곳에 한의원을 짓는 부부 이야기를 보고 찾아 간 적이 있다. 기초만 만들어 놓은 상태였는데, 하도 어설퍼 이게 과연 집이 될까 싶었다. 오늘 제대로 집을 지었는지 봐야겠다.


낙동강이 굽어 흐르는 임기초등학교를 지나 양지마을 앞 낡은 다리를 건너면 두음리로 가는 거친 비포장 길을 만난다.


어릴 적 이곳 양지마을에 이모할머니가 살았다. 그때는 다리가 없어 강 양쪽에 줄을 연결하고 그 줄에 배를 매어 강을 건너다녔다.


강을 끼고 있는 마을엔 물에 빠져 죽는 이가 많다. 어릴 적 기차를 타고 임기역에 내려 사람 하나 겨우 다닐 만한 오솔길 오리(五里)를 걸어 이모할머니 집을 찾아가면 젤 먼저 하시는 말씀이 뉘 집 아이 혹은 어른이 언제 물에 빠져 죽었다고 했다.


물에 빠져 죽으면 물귀신이 되는데, 물귀신은 꼭 산사람을 물로 꼬드겨 빠져 죽게 한다고 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던 나지막한 개울물에서 놀던 내가 강가에서 놀다 혹 변을 당할까 봐 조심하라는 뜻으로 부풀려 한 말씀이었으리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비 오듯 줄줄 흐르는 이 더운 날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막이다.


소천초등학교 두음분교는 전국에 몇 남지 않은 오지 학교다. 그래도 매년 입학하는 학생이 한둘은 있다고 하니 폐교될 염려는 없는 것 같다. 토요일이 안식일인 안식 교인들이 대부분이라 오래전부터 주 5일 수업을 해왔다.


왠지 학교가 낯설어 옛날 사진을 찾아보니 2008년 때는 단층 건물이었는데, 그사이 예전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은 것 같다.


수량이 많고 물이 깨끗해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놀러 오는 사람들이 꽤 있지만, 구마계곡이나 반야계곡처럼 알려지지 않아 조용하고 한적하다.


이곳 주민은 대부분 유기농으로 옥수수나 야콘 재배를 한다. 계곡이 좁아 논은 거의 없다. 가구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농지에서 농사를 짓고 생활한다는 게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마을이 끝나는 곳에 한의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오지 한의원임 셈이다. 이 깊은 골짜기에 한의원을 낼 생각을 한 젊은 한의사 부부의 용감함에 박수라도 쳐 주고 싶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홍보하고 나처럼 오지랖 넓은 블로거가 있어 대신 소개도 해준다지만 과연 이곳까지 환자가 찾아올까 궁금하다.


덥다고 클릿신발을 차에 두고 스리빠를 신고 탔더니 입에서 거품이 나온다. 게다가 길이 얼마나 가파른지 어젯밤 마신 술이 이제 막 오르는 것 같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올라가니 살림집과 진료실, 치유실을 포함하여 대여섯 채 집들이 옹기종이 모여있다. 명색이 그래도 한의원인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살림살이는 좀 정리를 했으면 좋겠다.


일요일이라 진료를 안 하는 줄 알았는데 월요일만 쉰단다. 시원한 물 한 사발을 먹고 그늘에서 쉬고 있으니, 잘생긴 의사선생이 수박과 옥수수를 내왔다. 온 김에 불편한 허리 진료를 받았으면 하니 점심시간이고 예약이 있다고 해서 다음 기회에 보기로 했다.


돌아갈 때는 페달 질 한번 없이 한방에 내려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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