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ide a bicycle

자전거를 타다

by 변기환 2013. 3. 10.

일요일...

나이가 드니 아침잠이 없다.

곤히 자는 사람 깨워 아침밥 달라고 했다가는 싸움 난다.

대충 아침 챙겨 먹고 밀린 숙제해 놓고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다.



블로그 본문 넓이가 좁아 사진이 코딱지만 하게 보이길래 며칠 전부터 조금씩 손을 봐서 본문 넓이를 넓히고 글씨도 조금 키웠더니 시원스럽다.



날씨 참 좋다. 이런 날 집에서 뒹굴면 벌받는다.



우리나라는 토목 공화국 삽질 공화국



부석가는 길에서 선비촌 방향으로...



봄을 준비하는 들녘은 평온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온갖 거름냄새, 축사에서 나는 소·돼지 X 냄새가 진동을 한다. 어떤 냄새를 상상하던 그 이상이다.


요기서 순흥 선비촌 방향으로...


부도가 나 흉물스럽게 방치된 판타시온 리조트. 애초 여기에 리조트를 짓겠다고 생각한 게 무리였다.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는 거 동양 최대, 세계 최고... 판타시온 물놀이장은 동양 최대... 그래 봤자 지리적 여건상 찾아오는 사람 없어 첫 해 개장 후 바로 부도



이 길에선 시속 30km 이상은 나와줘야 하는데 바람이 얼마나 심하게 부는지 10km 넘기기 어렵다.



멀리 소백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백산 주봉인 비로봉



오른쪽 우뚝 솟은 봉우리가 국망봉



연화봉



순흥면은 볼거리도 많고 먹을 거리도 많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 양조장이 두 군데나 있다는...



디자인 무시한 순흥 초등학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것 같다. 순흥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순흥면 사무소



여기가 옛 순흥 도호부 청사인 조양각의 뒤뜰이란다. 조기 연못 가운데 서 있는 누각이 봉도각.




무려 경로당이라는 ㅋ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있는 경로당. 여름에 시원한 대청마루에 앉아 10원짜리 화투 치면 세상 부러울 게 없겠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고 은행이 익어 떨어질 무렵 이 아름다운 길을 달리고 나서 집에 자전거를 세워 두면 집안에 X 냄새가 진동을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학교인 소수서원


소수서원은 반드시 해설사 안내를 받으며 느긋하게 둘러봐야 한다. 또한, 소수서원은 초암사, 달밭골로 이어지는 소백산 열두 자락길 중 1 자락길의 출발지다.



느긋느긋, 쉬엄쉬엄 한 시간 반을 달려 선비촌에 도착했다.



도촬 ㅋㅋ



보통 아흔아홉 간 백 간이라는 집은 방이 99개 또는 100개라는 게 아니다. 한 간(間)은 기둥 4개로 둘러싸인 공간을 말한다. 6개 기둥으로 둘러싸였으면 두 간짜리가 되고, 曰 형태의 집은 정면 1간 측면 두 간으로 부른다.


자전거를 기대어 놓은 저 집은 정면이 3간이고 지붕을 짚으로 이었으니, 말 그대로 초가삼간이다.



순흥은 역사적으로 참 불운한 곳이다.


1456년 금성대군(세종의 여섯째 아들. 단종의 숙부이자 세조의 아우)과 이보흠이 일으킨, 단종 복위 거사가 내부 고발로 실패하자 세조는 금성대군과 이보흠은 물론 순흥 인근 30리 지역 주민에게도 혐의를 뒤집어씌워 처형하였다. 당시 참화를 당한 사람들의 피가 죽계를 따라 10여 리를 흘러가 멎은 곳을 지금도 ‘피끝마을’이라고 부른다.


이곳 금성대군 신단은 금성대군과 순흥 부사 이보흠 및 그와 연루되어 순절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설립된 제단이다.



외지인이 많이 찾는 순흥 묵집 점심시간이라 주차장이 꽉 찼다. 사 먹는 밥에 대한 내 신조가 사람 많은 곳에 가면 대접 못 받고,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다. 뱃가죽이 등에 붙을 만큼 배가 고파도 여긴 통과...



오늘 바람 정말 심하게 분다. 올 때 앞에서 불던 바람이 갈 때는 뒤에서 밀어 줘야하하는 게 자연의 이치거늘 이노므 바람은 어딜 가나 항상 앞에서 불어온다. 이것도 머피의 법칙인가?



배고픔을 참으며 맞바람을 안고 점심 먹으러 찾아 온 자연묵집



반찬 참 소박하다. 난 음식 남기면 죽어 지옥가서 남긴 음식 다 먹어야 한다는 걸 철저히 믿는 사람이다.



이거 못 먹고 죽은 귀신은 불쌍해서 어쩌누...



비지에다 야채를 섞어 지진 비지 전, 맛은 있는데 느끼하다.



생각 같아서는 두 그릇도 비울 것 같았지만, 막상 먹어보니 한 그릇도 양이 많다. 배가 불러 더 들어갈 것 같지 않은데 동동주를 보니 한 잔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밥 배 술 배가 따로 있다는 게 거짓말은 아니다.


죽어 지옥 가서 배고플 때 먹으려고 조금 남겨 뒀다. 사후도 대비하는 이 치밀함...



먹으니 바로 효과가 나타난다. 이제껏 20km를 밑돌던 속도가 바로 30km를 넘어선다.



명색이 산길을 댕기는 MTB인데 산길은 못 가더라도 임도는 타 줘야 체면이 서지... 판타시온 리조트 바로 아래에서 임도로 오르는 곳이 있다.



생각 같아서는 단숨에 오를 것 같은데, 마음만 앞서고 금방 체력 방전...



나름 임도라고 난이도가 있다. 작년에 막냇동생을 데리고 여길 올랐는데, 금방 입에 거품 물더라...



내가 뭐 선수도 아니고 악착같이 경쟁해야 할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록을 세울 일도 없으니 힘들면 물 한 모금 먹고 쉬다가, 쉬엄쉬엄 가면 된다.



안장 바꿔야 하는데, 이 위에 3시간 앉아 있으면 볼펜 세 개 위에 엉덩이를 얹어 놓은 딱 그 느낌, 그 아픔이다.



중간에 만난 영주 MTB 회원들... 지금까지 살면서 남을 꼭 이겨야겠다는 경쟁심도 없었고 웬만하면 양보하고 중간만 가면 된다는 걸 신조로 살아왔는데, 오늘 이 사람들 보니 괜히 쓸데 없는 경쟁심이 생겨 열나게 밟아 앞서 가려다가 힘들어 죽을 뻔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사진이 넘어갔다. 옛날 어른들은 밥 먹은 뒤 배 꺼진다고 뛰지도 말라고 했는데 앞으론 쓸데 없는 일에 에너지 소비하지 말아야지.



그래도 나름 1등 했다는 뿌듯함을 안고 영주로 돌아왔다.



이젠 정말 봄인가 보다.



서울서 대학 다닐 때 청량리역에서 밤 11시 30분 기차를 타면 새벽 3시 30분 영주를 통과하고 춘양까지 가면 새벽 4시 30분이었는데, 지금은 서울·영주가 기차로 2시간 30분... 세상 많이 좋아졌다.



세상은 내려다보고 살아야 하는데 가진 거 없으면서 자꾸 쳐다보고 산다.



오늘이 영주 장인가 보다 얼른 집에 돌아가 씻고 장 구경 와야겠다.



씻고 장 구경하러 가기 전에 좀 쉬려고 누웠는데 밖이 시끄러워 내다보니 아파트 바로 옆 야산에 산불이 났다. 날씨가 건조하고 바람이 세니 어제·오늘 산불이 많이 난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는 데 아무리 재미있어도 산불구경은 하고 싶지 않다.



다행이 산불은 헬리콥터로 물 두 바가지 붓자 바로 꺼졌다.


'Ride a bicyc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섬마을  (10) 2013.08.05
죽령을 오르다.  (10) 2013.03.17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5) 2012.12.01
뱃살 좀 빼야지  (0) 2012.08.13
두음리 계곡  (2) 2012.07.2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