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마 전에 찍은 사진도 정리를 하려고 다시 보면 빛바랜 기억처럼 희미하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꽃이 된 것처럼 사진이란 게 그냥 보관하면 아무 의미가 없더라.
봄기운이 완연한 어느 날 어머니 생신이라 오랜만에 가족이 다 모였다. 올해는 조용한 수도리 무섬마을을 돌아보고 이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봉화군 물야면 선달산 자락에서 시작된 내성천과 소백산 국망봉 아래 돼지바위에서 흘러내린 서천이 만나 마을을 휘돌아 간다고 해서 수도리... 마을이 마치 물에 떠 있는 섬 같다고 해서 무섬마을...
등산을 다니다 보면 우리나라 고유 지명이 참 정겹다는 걸 느낀다. 고향치, 마당치, 늦은목이, 늦맥이, 장터목, 여우골, 곰넘이재 등등...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이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그 속에 담긴 섬세함을 보게 되고, 그것이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도 알고...
산수유 꽃을 흔드는 바람에 봄 향기가 물씬 배어난다. 봄바람은 처녀 바람이라는 데, 처녀는 도회지로 다 떠나고 생기 없는 시골엔 처녀가 그리운 노총각만 남았다.
어릴 때 한겨울 대야에 뜨신 물을 받아 세수를 하고 나서 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쩍쩍 달라붙던 섬뜩한 느낌 때문에 한옥이 싫었는데, 나이가 드니 불편했던 하나하나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진한 추억으로 남았다.
묵은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새 지붕을 얹기 위해 지붕을 엮고 있다.
복사꽃 능금 꽃이 피는 무섬마을... 만나면 즐거웠던 외나무다리...
그리운 내 사랑은 지금 외나무다리에...
고왔던 스물일곱에 시집 와서 어느새 중년이 되었다. 그래도 그때 그 모습처럼 단아하고 단정한 게 항개도 변한 게 없소. 까칠한 성격 마져도....
니 초상권은 큰아버지에게 있으니 내 마음대로 할련다.
뛰지마라 배꺼진다.
사소한 걸 눈여겨 보는 게 크게 될 놈이로다.
그놈 참 이럴 땐 귀엽기도 하고...
엄마 조르지마라.
너는 다리가 짧아 탈 수 없으니, 나중에 커서 자전차가 남아 있으면 그때 타거라.
얘들 노는 모습이 많이 귀엽죠??
그놈 자전차 안태워 준다고 삐졌다.
나도 가끔 이렇게 낮술 한잔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 겠~ 다~
삼부자 노는 모습이 정겹다.
뉘엿뉘엿 해가 진다.
해가 졌다. 밥 먹으러 가자.
미리 예약해 둔 25,000원 생신상...
마당도 세평 하늘도 세평...
여섯 시 반 예약을 했는데, 십분 일찍 왔다고 상 차리는 바깥 주인 손끝에 짜증이 느껴진다.
조미료를 쓰지 않았다는 안주인의 상냥한 인사에도 불구하고, 미리 만들어 놓은 음식 데워 주는 게 가격도 대접도 아주 많이 섭섭했다.
너도 오늘 저녁이 부실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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