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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울진 사동항

by 변기환 2014. 8. 10.

태풍 할롱이 먼 동해를 지나가는 휴일 오후 태풍으로 인한 비 예보로 집에서 할 일 없이 뒹굴고 있는데 동네 고깃집 행님이 울진 사동항에 낚시 왔다며 오라고 바리바리 전화를 해대네요. 안 가면 삐칠 것 같아 대리기사로 집사람 모시고 울진 사동항으로 달려가는데 불영계곡부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쏟아붓던 비가 울진을 지나자 서서히 잦아들더니 인적이 드문 사동항에 도착하자 다행히 그쳤습니다. 새 차 길들이는 중이라 2,000 RPM을 넘지 않도록 살살 운전했더니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태풍 영향이긴 하지만 무슨 한 여름 기온이 20도... 쌀쌀하다 못해 춥네요. 낚싯대 몇 대 던져 놨는데 수온이 낮아 수확은 뻔할 듯...

 

 

동네 고깃집 형님의 사업용 1톤 윙바디가 낚시에 그만입니다. 한쪽 탑 올리고 낚싯대 펴 놓으면 준비 끄읏... 차 바닥에 두툼한 자리와 이불 깔아 놓으니 캠핑카 못잖네요. 동네 고깃집 행님은 1박을 할 예정이랍니다.

 

 

이 날씨에 낚시는 한 여름에 토끼 잡겠다고 덤비는 꼴... 고기가 안 잡히자 동네 고깃집 행님이 울진에서 공수한 오징어, 도다리, 광어, 붕장어 회... 술이 술술 넘어갈 것 같은데 대리기사로 모시고 온 집사람이 새 차 운전에 자신 없다고 해서 맥주 한 잔만 먹었더니 회도 별로 맛이 없네요.

 

 

이른 저녁으로 닭백숙 한 그릇 해치우고...

 

 

바다 구경 갑니다. 태풍 영향으로 외항은 파고가 높고 바람이 쎄 고기잡이배들이 전부 안전한 내항으로 피신했습니다.

 


집어등을 매달아 놓은 걸 보니 주 포획 어종이 오징어인 듯... 예전 후포항에서 집어등을 켠 배를 본 적이 있는데 밝기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쳐다보는 순간 몇 초 동안 시력 마비...

 

 

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도록 방파제를 쌓았는데 가운데 부분에 배가 드나드는 통로가 있으며 방파제 양쪽 끝에는 초록색과 붉은색 빛을 밝히는 높이가 앙증맞은 등대가 서 있습니다.

 

 

외항은 3m 이상 사나운 파도가 육지를 향해 쉴 새 없이 들이치지만...

 

 

방파제로 둘러싸인 내항은 호수처럼 잔잔합니다.

 

 

소설 "갈매기의 꿈"의 "조나단 리빙스턴"인양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꼿꼿이 서 있는 놈... 포스가 남다르네요.

 

 

집채만 한 파도가 끊임없이 방파제를 때리고 인공구조물에 부딪친 포말이 짙은 안개처럼 사방에 흩날려 비릿하고 축축한 느낌이 불쾌하지만 멀리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은 답답한 내 가슴을 후련하게 쓸어 주네요.

 

 

상황에 딱 맞는 노래가 떠오르는군요. - 밀려오는 그 파도소리에 단잠을 깨우고 돌아누웠나 못다 한 꿈을 다시 피우려 다시 올 파도와 같이 될 거나...

 

 

슬금슬금 어둠이 내리고 바람은 점점 더 심하게 몰아칩니다.

 

 

열악한 날씨에도 손 맞은 봤네요. 고기가 물었다는 걸 동네 고깃집 행님이 알려줘 내가 끌어올린 뻔한 시추에이션이었지만, 낚시를 끊은지 20여 년... 그동안 잊고 있었던 짜릿한 손 맛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처음 대물을 낚았을 때 느꼈던 그 느낌 그대롭니다.

 

 

대리기사로 데리고 간 집사람은 새 차에 적응을 못해 결국 내가 상전 모시듯 고이 모시고 돌아왔습니다. 태풍이 지나간다는 예보에도 낚시를 가야 하는 동네 고깃집 행님의 집착을 보니 20년 전 낚싯대를 강에 던져버리고 그길로 낚시를 그만둔 내가 새삼 대견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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