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감이 있지만, 백천계곡 단풍 구경하러 집을 나섰습니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에 여객기가 긴 여운을 남기며 축하 비행을 하는군요.
청옥산 휴양림을 지나 현불사에서 세운 입석의 안내를 받으며 백천계곡으로 접어듭니다. 열목어 서식지로 유명한 백천계곡은 석포면 대현리에서 현불사 방향으로 약 십 리 정도 이어지는 계곡이며 사시사철 수량이 풍부하고 수십 년간 사람의 접근을 막아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곳입니다. 또한, 백천계곡에서 부쇠봉을 지나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등산의 시작이며 끝이기도 한 곳입니다.
백천계곡 입구 오른쪽에 우뚝 솟은 진대봉에도 고운 단풍이 들었네요.
길 양쪽으로 올 1년을 거쳐 몸단장을 한 단풍이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습니다.
현불사는 주지가 입적한 후 주지 자리를 놓고 싸움이 벌어져 현재 용역 깍두기 행님이 출입을 막고 있습니다. 지혜롭고 자비로워야 하며 무상과 무소유를 실천함으로써 번민과 번뇌에 빠진 불쌍한 중생의 모범이 되어야 할 승려가 권력과 제물에 눈이 멀어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양아치 짓을 하고 있습니다.
현불사를 조금 지나 좁은 산길을 오르면 더 이상 차로는 오를 수 없고 약 1.5Km 백천계곡 트래킹이 시작됩니다.
오랜만에 장마 때나 들을 수 있는 우렁찬 계곡물 소리를 들으니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네요.
형형색색 아름다운 단풍을 기대했건만, 지난밤 내린 서리로 백천계곡의 단풍은 전설이 되었고 쓸쓸함과 황량함만이 굴러다니네요.
앙상한 가지만 남은 가을 풍경은 모처럼 나들이에 들뜬 가족의 뒷모습조차 쓸쓸하게 합니다.
활엽수 잎이 떨어져 바닥에 뒹굴면 가랑잎이 됩니다.
수년 전 내가 이름을 지어준 메롱 바위도 여전히 잘 있네요.
이곳 단풍이 숨 막히게 아름다운데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앙상한 가지만 남았습니다.
몇 년 전 찍은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단풍이 떨어져 계곡 물도 핏빛입니다.
찾아보면 아직 단풍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가을바람에 놀란 으악새 우는 소리가 가슴을 저미는군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낙엽송도 단풍이 드니 이쁘네요.
인생에서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보여주는 단풍...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깊은 산중이라 벌써 해가 퇴근을 서두르는군요.
아쉬움을 남기며 내년 강렬한 핏빛 단풍을 기대하며 발길을 돌립니다.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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