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문턱을 넘어가는 시월의 3일 황금연휴 동안 여기저기 많이도 돌아다녔습니다. 연휴 마지막 날 바닷바람을 쐬고 싶어서 찾은 울진 후포항...
점심시간을 딱 맞춰 왔네요.
요즘은 홍게 철이라 수조마다 붉은 홍게로 가득합니다.
불곰처럼 사납게 생긴 러시아산 게도 보이네요.
대게의 고장 울진에 왔으니 섭섭하지 않게 홍게 만 원짜리 2마리 주문... 쪄서 식당까지 배달해 줍니다.
예전보다 호객행위가 덜해 구경하는 부담이 적네요.
장고 끝에 자연산 참가자미 2마리와 쥐치 3마리 오징어 1마리 주문... 합 30,000원 무쟈게 저렴합니다. 횟집이면 의례 깔리는 땅콩이나 번데기, 소라, 찐 새우 따위는 없습니다.
양이 많아 반도 못 먹을 듯... 비위가 약해 회를 못 먹던 시절 서비스로 거저 주는 오징어 회를 돈 주고 사 먹으면서 이상한 사람 취급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뼈째 씹히는 고소한 참가자미 세꼬시...
주문한 게 도착... 회 접시는 살포시 옆으로 밀어 놓고....
아직 살이 꽉 차지는 않은 듯...
껍데기 깨는데 성공하면 그냥 쫄깃쫄깃한 집게살...
꼬신 회도 쫀득한 게도 술 없으니 덜 꼬시고 덜 쫀득하네요.
볼살이 쫄깃한 우럭 매운탕... 우럭회를 먹지도 않았는데 매운탕은 우럭 매운탕...
"여기 게장에 밥 비벼주세요." 그런 거 없습니다. 참기름 한 방울도 안 줍니다. 이 집은 얼마나 불친절한지 뭘 더 달라고 하면 멱살부터 잡을 기셉니다. 뭐 맨밥만 비벼도 맛은 있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입이 짧아 게장은 못 먹었는데 나이가 드니 외모도 입맛도 바뀌네요.
자연산 광어에 비해
양식광어는 왠지 상태가 메롱 한 듯...
광어와 쥐치, 우럭 몇 마리 포장...
파닥파닥하던 싱싱한 광어가 먹기 좋은 회로 변하는데 1분밖에 안 걸립니다. 니들 인생도 참....
헐~ 요즘은 생선껍질도 기계가 벗기는군요.
회 써는 기계도...
심지어 씻은 회 물기를 짜는 짤순이까지...
세상 참...
그래도 광어는 예의를 갖춰 직접 써는군요.
회 써는 틈을 타 탈출을 시도한 방어...
오지게 먹고 잠시 주위를 둘러봅니다.
내가 학창시설 봉천동과 난곡동 판자촌에 살 때 그 풍경입니다.
비릿한 바닷바람에 묻어오는 진한 가을을 느끼고 싶었는데 무쟈게 춥네요.
TV를 보지 않으니 "그대 그리고 나"란 드라마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집 주인은 스트레스 무진장 받을 듯...
갈매기의 꿈은 나와 같을 까?
대게 빵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섰네요. 줄 서서 사 먹을 만큼 맛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후포와서 대게 빵 안 먹고 가면 섭섭하다는데 빵 좋아하는 술꾼 없으니 패쓰~
하늘과 바다를 반반씩 담을 수 있는 수평선의 수평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허파에 바닷바람이 들어가니 젊었을 때 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기분은 들뜨네요.
오로지 바람의 힘으로만 움직이는 요트...
큰 배는 영어로 Ship 쉽...
작은 배는...
Ship 새끼...
일당이 1달러인 에티오피아 커피 농장 노동자가 한 잔에 4~5달러나 하는 한국의 커피 가격을 이해할 수 있을는지...
돌아오는 길에 예전 집사람이 근무할 때 점심을 대 놓고 먹던 식당에 들렀습니다. 집사람을 친딸처럼 아끼고 챙겨서 내가 양 장모님이라 부릅니다.
회 한 접시 사 드렸더니 냉장고며 텃밭을 뒤져 또 바리바리 싸 주십니다. 아들 주라며 금일봉도 주시고...
"휴일에 할 일이 없어 집에서 뒹굴지 말자." 내가 마흔이 넘어서 정한 규칙입니다. 특별한 버킷리스트는 없지만, 느낄 수 있을 때 느끼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며 다닐 수 있을 때 많이 다녀 인생을 풍성하게 꾸미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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