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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ain Climbing

소백산 제2 연화봉대피소

by 변기환 2016. 1. 2.

바라지는 않았지만, 소백산에도 대피소가 생겼습니다. 작년 11월 26일 개소식을 열고 시범운영을 시작했으며 12월 1일 정식으로 개장했는데 개장 초기라 예약이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예약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기회를 보다가 가까스로 1월 1일 두 자리를 잡았습니다.

오후 3시 동행할 동생을 죽령에서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형을 만났다고 와인 세트를 사 왔군요. 몇 년 전에 비싼 와인을 집사람 마시라며 가져왔는데 그걸 집사람이 마신 걸로 철석같이 믿는 동생의 여린 동심에 상처 주기 싫어 "너 형수가 와인을 상당히 좋아하더라." 했더니 그 뒤 올 때마다 와인을 사오는군요. "미안하다. 동생아 너 형수 술 못한다. 대신 내가 잘 마실게..."

자전거 탈 때 쓰라며 스포츠 고글을 사 왔네요. 루디 프로젝터 변색 스포츠 고글은 최소 20만 원을 가볍게 넘는데...

취사도구와 아침·저녁 먹을 음식을 쌌더니 배낭 무게가 12kg을 훌쩍 넘습니다. 삼각대는 무게가 만만찮아 심각하게 고민해 챙겼는데 써 보지도 못하고 결국 짐만 되었네요.

목적지인 강우레이더 관측소가 보이는군요. 앞서가던 등산객이 갑자기 외마디 비명과 함께 도로를 벗어나 사라지는 걸 보고 뛰어가 보니 다행히 조금 미끄러지다가 나무에 거꾸로 걸렸더군요. 지고 있던 배낭을 받아보니 무게가 20kg은 되는 듯... 배낭 무게 때문에 순식간에 거꾸로 미끄러진 것 같습니다.

나무에 걸렸으니 무사했지 그 아래엔 2m가 넘는 절벽인데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습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찾는 걸 보니 아마 핸드폰을 보고 걷느라 발을 헛디딘 것 같습니다. 사고는 예측할 수 없고 한순간입니다. 그리고 산에서 하룻밤 자는 거 좀 불편해도 짐을 가볍게 하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뭘 그리 바리바리 쌌는지... 참...

해발 1,357m, 제2 연화봉에 있는 소백산대피소는 과거 KT 중계소로 운영되던 건물입니다. 이 중계소를 2012년 9월 26일 소백산 강우레이더 관측소로 자리를 옮기고 건물을 기부채납 형식으로 받아 리모델링해 대피소로 탈바꿈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대피소 이름이 "소백산 제2 연화봉대피소"입니다.

동생은 등산을 하지 않아도 평소 자전거를 타니 전혀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2시간 걸리는 거리를 1시간 20분에 올랐는데 거뜬히 따라 왔네요.

잠시 숨을 고르며 사방을 둘러보니 겨울엔 좀처럼 볼 수 없는 황홀한 풍광이 펼쳐집니다. 여기가 무릉도원인지 예티가 사는 히말라야 어딘가 숨어 있다는 샹그릴라인지...

운해가 파도처럼 봉우리를 들이치고 때로는 크게 집어삼켰다가 살짝 물러서니 봉우리는 섬이 되었다가 산이 되었다가를 무한 반복... 마치 거친 바다를 보는 것 같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에 나오는 안드로메다 은하를 보는 듯 장엄하고 신비로운 풍광입니다.

형의 명령에 마지못해 따라온 표정을 지었던 동생의 얼굴에 급 화색이 돌더니 연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대는군요. "형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법이다."

강우레이더 관측소 꼭대기엔 전망대가 있으며 누구나 승강기를 타고 올라 전망을 볼 수 있습니다.

수용인원에 비해 규모가 작은 취사장...

대피소 숙소 건물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2016년 첫날 첫 해가 집니다.

안녕~ 내일 아침 동쪽에서 다시 만나자.

대피소는 개장 초기라 무척 깨끗합니다. 신분증을 확인하고 자리배정을 받습니다. 담요는 2,000원 별도입니다.

등산화를 넣어 둘 수 있는 신발장이 있지만, 열쇠가 없어 신발을 꺼내 밖에 나왔다 들어가면 자리가 바뀌기 일쑤...

비로봉과 국망봉은 2층으로 된 8인 가족실이며 모든 숙소는 문을 닫으면 내부가 보이지 않는 폐쇄형입니다.

국립공원 대피소가 1박 이상을 종주해야 하는 코스에 체력적인 부담 및 기타 이유로 종주할 수 없는 경우 하루를 쉬어 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편의를 제공하는게 운영목적인데 소백산대피소는 그런 목적보다는 가족 또는 연인이나 지인끼리 편하게 올라 자연경관을 즐기며 하루를 쉬어가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타 대피소가 민박급이라면 소백산대피소는 오성급 호텔 수준입니다.

모든 숙소는 이 층 침상 구조며 칸을 막아 옆 사람의 끈적한 체온과 뜨거운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단, 가족실은 칸막이가 없다고 합니다.

남·녀 탈의실도 있으며 심지어 화장실도 실내에 있고 무려 좌식입니다. 몇 년 전 체감기온 영하 20도인 소청대피소에서 화장실 줄 섰다가 손이 얼어 지퍼를 억지로 내린 기억이 생생한데 여긴 완전 신세계입니다.

저녁 시간이 이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리를 잡을 수 없을 것 같아 취사장 한쪽 전망이 가장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술이 부족했어 ㅠㅠ

선물도 사 왔는데 봉화 한약우 1++ 갈빗살을 준비할 걸 그랬나?

진짜 술이 부족했어 ㅠㅠ

배달용 1회 용기를 버리지 않고 잘 활용하면 배낭 무게와 부피를 줄일 수 있으니 일석이조...

라면 하나 끓여 나눠 먹는 것으로 마무리...

요즘 우리 국민이 제정신입니다. 누구 하나 큰 소리로 떠들거나 술에 취해 해롱 되지 않고 다들 조용조용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물론 오늘은 산악회가 오지 않았으니 그런지 모릅니다. 산악회가 왔었다면 많이 달라졌을 듯... 산악회는 예비군과 같은 것, 예비군복만 입으면 사람이 달라지듯 산악회만 들어가면 멀쩡한 사람도 이상해지니...

대피소는 밤 9시면 불을 끕니다. 부족한 술을 아쉬워하며 잠자리에 누웠는데 사방에서 5.1채널 돌비 돼지털 서라운드로 퍼지는 코 고는 소리에 한숨도 못 잤습니다. 특히 왼쪽 분은 기차 화통을 삶아 드셨는지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코를 골다가 몇 분간 무호흡 상태로 빠지는데 내가 걱정돼 몇 번이나 죽지 않았는지 살펴봤네요. 10시간을 좌로 100번 우로 100번 합 200번을 뒤척이다 겨우 일어나니 몸은 천근만근 눈 밑엔 다크써클이...

아침은 떡만둣국...

육수는 끓여 간을 한 뒤 얼리고 지퍼 팩에 분량의 만두, 떡살, 파를 포장하고 작은 아이스팩에 얼린 육수와 같이 보관하면 12시간은 상하지 않습니다.

현재 기온 영하 6도 체감 온도는 영하 10도...

오늘 일출 시각은 7시 35분...

그러나 짙은 안개로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으니 오늘 일출은 생략한다.

아침 운동 삼아 연화봉으로 출발...

연화봉에 올랐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안개는 걷힐 기미가 없네요.

내려갑니다.

키 낮은 철쭉에 상고대가 예쁘게 달렸습니다.

남들 등산하는 시간에 산을 내려가니 이상하네요.

다~ 내려왔습니다. 국립공원대피소의 하룻밤은 최소 4시간 이상 힘들게 걸어야 가능하고 온통 불편함 투성인데 너무 쉽게 올라 모텔처럼 편하게 자고 나니 뭔가 허무한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나 모처럼 동생과 이런저런 유쾌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고 더불어 환상적인 일몰을 볼 수 있었으니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등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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