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인데 쉬지도 못하고 이틀 연속 당직 근무를 해야 하는 집사람 위로차 아들 꼬셔서 행정구역은 경상북도이지만, 생활권은 강원도인 석포로 달려갑니다. 고선계곡 입구를 지나고 있습니다.
해발 896m 넛재를 힘들게 넘어갑니다.
청옥산 자연휴양림을 지나니
고바이가 무쟈게 씨네요. 몸 안 좋을 땐 운전하는 사람도 멀미를 합니다.
소천과 강원도 도계를 잇는 국도 31호 선 공사가 한창입니다.
아름드리 춘양목으로 울창했던 산허리를 다 잘라놨네요. 휴가철 외에는 지나는 차량이 많지 않은데 이 도로 건설로 경제적 파급효과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파헤쳐지는 산야를 볼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석포면 대현리 현불사 근처를 지나고 있습니다. 불승종이라는 종단을 만든 설송이 창건한 현불사는 정치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절로 유명합니다. 김대중, 박근혜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기 전에 다녀갔습니다. 정치인이 현불사를 찾는 이유는 부채도사를 상상하시면 됩니다.
석포 방향에서 본 대현리입니다. 지금은 몰락한 광산촌이지만, 한 때 연화광업소가 납, 아연을 채굴하면서 종업원이 천명에 달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던 곳입니다. 2년 전 폐교가 된 대현 초등학교는 한때 전교생이 수백 명이 넘었고, 광업소 노동자 월급 정산을 위해 석포농협에서 이곳에 출장소를 둘 만큼 번창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대순진리교에 팔린 연화광업소 직원들이 살던 아파트입니다. 들리는 말로는 대순진리교에서 유스호스텔로 개조한다고 했었는데 주민들 반발이 심해선지 방치하고 있습니다. 텅 빈 아파트 단지를 개 한 마리가 지키고 있네요.
자세히 보니 텅 빈 게 아니라 몇 가구가 살고 있네요. 많이 무서울 텐데...
숨이 막히는 막장, 기억처럼 희미하게 흔들리는 불빛에 비친 바위를 깨 가며 납과 아연을 캐던 광부의 고단한 삶을 함께했을 아파트는 이제는 흉물이 되었네요.
아파트가 있기 전, 광부들은 연화광업소 주변 허름한 사택 백여 가구에 흩어져 살았는데 1990년 이곳에 아파트를 신축하자 모두 이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새 아파트에서 사는 즐거움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93년 연화광업소의 갑작스러운 폐광으로 모두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까요.
여기가 예전 연화광업소가 있던 곳입니다.
토종벌 95%가 폐사했다고 하던데 이곳엔 토종벌통이 꽤 많이 보입니다.
석포와 태백, 봉화로 갈라지는 삼거리입니다.
이곳을 六松亭이라 하는데 소나무 6그루가 있었다고 해서 육송정인가?
오래전 육송정에서 찍은 사진이 생각나 뒤져보니 있네요. 딱 10년 전 어린이날 강릉 에디슨박물관 가는 길에 찍은 사진입니다. 모자 쓰고 공손하게 앉아 딜러를 보는 놈이 아들입니다. 지금도 이쁘지만 저 때는 더 이뻤네요.
육송정 앞을 흐르는 낙동강에 쏘가리, 산천어, 열목어, 꺽지가 많이 잡히는데 취미 수준을 넘어 즐기던 낚시를 끊은 걸 지금도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어김없이 잠기던 철교 밑을 우회할 수 있도록 새 길을 놓았습니다.
태백에서 흘러와 영풍 제련소를 지나가는 낙동강입니다. 예전 태백지역 채탄이 한창일 때는 죽은 강이었는데 요즘은 무척 깨끗해 졌습니다.
석포는 고랭지 배추와 씨감자 생산지로 유명합니다.
석포역입니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석포역은 승객 수송보다는 영풍 제련소에 속한 화물역에 더 가깝습니다. 화물 대부분이 아연 괘와 아연을 생산하면서 나오는 부산물인 '황산'입니다.
석포는 시간이 멈춰진 듯 변한 게 없네요. 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 삼촌이 농협에 근무하고 있어 할머니 손잡고 온 적이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습니다.
여긴 주차를 한다는 게 아니라 차를 버린다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좁은 길에 차를 세울 때는 다른 차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오른쪽이나 왼쪽 어느 한 쪽에 주차를 하는 게 상식인데, 여기는 오른쪽 왼쪽 지 맘대로 차를 세워 둡니다.
그리고 이 길은 일방통행입니다. 전에 모르고 반대쪽에서 온 적이 있는데 마주 오던 운전자가 째려보길래 나도 창문 내리고 같이 째려봤던 기억이 나네요. 나중에 일방통행이란 걸 알고 얼마나 무안하던지...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접시 안테나 달린 것 외에는 변한 게 항개도 없군요.
스마트폰이 시골 아이들 노는 모습까지 바꿔 놓았습니다.
면사무소 앞에서 본 거리입니다.
잠시 석포 시가지를 둘러봅니다. 영풍 제련소가 뽀얀 수증기를 뿜으며 힘차게 돌아갑니다. 물 맑고 공기 좋아 청정지역 1순위, 귀농 1순위로 치는 봉화에서도 최고 오지인 이곳에 황산이나 카드늄 같은 중금속 물질을 배출하는 아연 제련소라 참 아이러니하네요.
막걸리 사러 가는 길에 아이폰으로 같은 방향을 찍은 야경입니다.
왼쪽 건물이 병설 유치원이고 오른쪽이 석포 초등학교입니다.
영풍 제련소 직원 사택입니다. 재계 38위 영풍그룹의 계열사인 영풍 제련소는 임금이 짜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선지 요즘 외국인 노동자가 부쩍 많이 늘었습니다.
전망 좋은 곳에 봉화군에서 문화마을 부지를 조성하고 분양을 했네요. 이곳이 이른바 석포의 베버리 힐즈 또는 청담동 쯤 되는 곳입니다. 대부분 영풍 제련소 하청업체 사장이 사는 곳입니다. 이곳은 아랫동네와 사는 격이 다릅니다.
오늘 하루 묵을 장소입니다. 집사람이 동네 주민께 특별히 부탁하고 현장 답사까지 해서 잡은 곳이라는데 도로와 떨어져 있어 짐 나르느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캠핑이란 게 텐트에 코펠, 버너만 있으면 되는데, 짐 쌀 때는 이것도 필요할 것 같고 저것도 필요할 것 같아 자꾸 챙기니 가짓수가 장난이 아니네요. 저것들 중에 풀어보지도 않고 그냥 가져가는 게 대부분인데...
냉장고에 맥주부터 담가놓고
텐트 치고 대충 짐 정리한 후 석포에서 산 돼지고기를 굽습니다. 먼지 많은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목에 쌓인 먼지를 씻어 낸다고 돼지고기를 많이 먹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없던 삼겹살이라는 부위가 태백 탄광촌에서 생겨났다고 하는데, 그만큼 탄광촌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많이 먹었다는 뜻이겠지요.
실제로 "돼지고기 기름기가 입이나 목에 쌓인 먼지를 씻어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체내에 쌓인 중금속을 배출해주는 역할은 과학적으로 입증됐다”고 합니다.
연화광업소 광산 노동자가 많았던 석포도 그 영향으로 질 좋은 돼지고기를 파는 식육점이 많습니다. 숙성이 잘된 생고기가 목우촌 돼지고기 따위는 명함도 못 내밀겠네요.
어둑어둑해지니 불을 켭니다. 가스 랜턴 대신 12V 14W LED 바를 가져왔습니다. 12V는 너무 밝아 9V로 사용하면 딱 좋습니다.
가지고 있는 휴대용 배터리로 12V로 사용 시 약 3시간을 9V로 사용할 때는 10시간 이상 사용할 수 있습니다.
텐트에 켠 등은 홈플러스에서 6,000원 주고 산 코베아 6구 LED 등입니다. AAA형 건전지 3개를 사용하는데 핸드폰 배터리 2개를 넣을 수 있도록 개조하니 6구 사용 시 10시간, 3구 사용 시 하루는 거뜬히 갑니다.
6구를 다 켜면 책을 읽을 정도로 밝고 3구 만 켰을 땐 취침 등으로 그만입니다. 캠핑 붐이 일면서 코베아 제품에 거품이 많이 낀 것 같지만 그래도 제품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저 외장 배터리는 잦은 고장으로 3번은 교환 받은 것 같네요. 약간 문제가 있는데 이젠 교환 받기도 귀잖습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선선하다 못해 추워집니다. 석포 기온이 영주보다 평균 3~5도 정도 낮습니다.
불 피울 화롯대를 가져가지 않았는데 고기 굽는 깡통을 주워 캠핑의 꽃인 불을 피워봅니다. 나무가 젖어 불이 붙지 않아 얼마나 불어 댔는지 핑도네요.
상쾌하고 선선한 공기 때문인가요? 술이 안 취하네요.
가지 말고 나하고 놀자.
자정 무렵 일기예보를 보니 물 폭탄, 집중호우, 산사태 주의라고 엄포를 줘서 급히 짐 정리해서 집사람이 가끔 사용하고 있는 사택으로 철수합니다.
밤 중에 텐트 걷고 짐 싸서 철수하느라 죽을 뻔했는데, 다행히 새벽부터 어젯밤 수고가 헛되지 않게 천둥·번개 요란하게 장대비가 쏟아지는군요.
텐트에서 하룻밤 자 보지도 못하고 씻고 말려야 하는 짐만 잔뜩 쌓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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