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울진 백암산을 오르기 위해 구주령을 넘어 백암온천으로 달려갑니다. 한때 루어낚시에 빠져 백암온천 지나 온정천에 꺽지 잡으러 구주령을 무진장 넘어 다녔습니다.
비 예보가 있지만 산 좋아하는 산악인에게 눈, 비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후에 가랑비가 내린다고 하니 갈 때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과 로이킴의 봄봄봄을 올 때는 박인수의 봄비를 듣겠네요.
한 시간 반을 달려 백암 한화콘도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무늬만 골프 연습장을 지나 한참 올라가다 보니 본능적으로 느낌이 안 좋아 지도를 살펴보니 역시 길을 잘못 들었군요.
내려와 차를 돌려 백암콘도까지 이동... 안내소 탐방 기록부에 출발 시각과 도착 예정 시각, 연락처를 적어 놓고 9시 30분 백암산으로 출발합니다.
천냥묘 방향으로 올라 백암산 정상 찍고 백암산성과 백암폭포를 거쳐 하산하는 10.5km 코스... 등산 안내도에는 오르는 데 2시간 40분 내려오는데 3시간 20분 총 6시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등산 안내도와 지도를 챙기는 것은 등산의 기본입니다. 나는 등산 안내도를 핸드폰으로 찍어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봅니다.
그렇게 힘든 기억이 없었는데 경사를 보니 중급 이상 되는 가파른 산이였군요. GPS 트랙을 구글어스로 불러와 3D로 보니 역시 만만하게 볼 산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숨이 깔딱 넘어갈 만큼 힘든 산도 아니고...
등산 안내소에서 백암폭포 갈림길까지는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하고 사방에 굵은 금강송이 빼곡히 자라고 있습니다. 소나무가 뿜어 대는 상큼한 피톤치드 향기에 어젯밤 먹은 술이 깨면서 아드레날린이 치솟는군요.
내가 사는 동네 꽃들은 세상모르고 겨울잠을 자고 있는데 이 동네 꽃들은 다 깨어났네요. 복사꽃이 탐스러운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봄 척후병 진달래가 어느새 활짝 폈습니다.
나뭇가지를 꺾으면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해서 생강나무라 하는데 생강나무 꽃은 산수유 꽃과 매우 흡사합니다.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것처럼 잔뜩 흐렸습니다.
정상 방향으로 올라 백암산을 돌아 백암폭포로 하산합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군요.
묘 두 개가 나란히 있고 천냥묘라는 표지판이 서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연이 있을 듯한데 표지판에 다른 내용이 없고 인터넷을 뒤져봐도 유래를 알 수 없네요. 풍수를 봐서 썩 좋은 자리가 아닌데 천 냥 주고 샀다고 천냥묘인가?
간간이 내리던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는군요.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배낭에 커버를 씌우고...
돌 하나를 던져 놓으며 올해 수능 시험을 치는 아들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있도록 빌어봅니다. "아들아 아버지 벌어놓은 돈 없으니 등록금 저렴한 국립대 가던지 등록금이 반값인 서울시립대 가거라 너 서울시립대 가면 아빠 바로 BMW 520d 뽑는다."
두 주에 한 번꼴로 산에 오르지만 맑게 갠 날이 별로 없네요.
노부부가 정답게 산을 오르는군요. 남자가 우의 입고 앞장서고 여자가 비 맞아 가면서 뒤따르는 걸 보니 물어보지 않아도 경상도 부부입니다.
심심찮게 남의 묘 벌초했다는 소리를 듣는데 이런 기가 막히는 방법이 있었네요.
송진 채취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동남아시아 침공시 부족한 항공 연료를 얻기 위해 강압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해방 후에는 돈벌이 수단으로 오랫동안 행해졌습니다.
송진을 증류하면 테레빈유와 로진을 얻을 수 있는데 테레빈유는 연료나 의약품, 도료 등에 사용되며 로진은 방수포나 인쇄 잉크를 만드는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월악산을 오르다 보면 60년대 송진 기름 채취를 위해 사용된 가마인 송탄유굴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백암산 등산로는 국립공원 못잖게 잘 정비되어 있지만 여기저기 등산객이 버린 쓰레기와 담배 꽁초가 널려 있습니다. 곤충이나 설치류는 생태계를 파괴하기도 하지만, 포유류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인간은 절대 포유류가 아닙니다.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 속에 백암산 정상이 보입니다.
등산로를 기준으로 좌측엔 활엽수가 우측엔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드문드문 잣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백암온천을 출발한지 1시간 50분 만에 정상에 올랐습니다. 등산 안내도에서는 2시간 40분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맑은 날에는 동해와 일월산을 한눈에 볼 수 있을 정도로 조망이 끝내준다는데 오늘도 조망이 꽝! 서둘러 백암폭포 방향으로 하산합니다.
소낙기 퍼붓는 수준으로 비가 내리는군요. 급히 55만 원짜리 고어텍스 비옷을 꺼내 입습니다.
백암산이라고 불리기에는 너무 빈약한 백암들...
간덩이가 부은 산비둘기입니다.
빗줄기가 잦아든 틈을 노려 재빨리 점심을 먹습니다. 집사람이 몰래 떡과 두유를 챙겨 넣었군요. 여편네 갑자기 보고 싶네... 나 떡 안 먹는 줄 알면서...
끓는 물 붓고 4분... 먹는데 4분... 오늘 점심 먹느라 8분 쉬었네요.
길이 1.6km 통일신라시대 축조한 것으로 전해지는 백암산성...
백암산성 바로 아래에 갈림길이 있고 이정표는 정확히 가운데를 가르치며 안내초소 방향이라고 합니다. 어디로 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리본이 많이 걸린 쪽으로 가기로 결정합니다. 내려와 보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네요. 도중에 합류합니다
이런 KS 인증 마크 없는 사제 밧줄은 낡은 곳은 없는지 힘을 충분히 버틸수 있는지 잘 살펴보고 매달려야지 생각 없이 매달렸다가는 119 구조대 등에 업혀내려올 수 있습니다.
KS 인증 규격품은 바로 이런 제품입니다.
꽤 많이 내려왔는데 곳곳에 백암산성 흔적이 보입니다.
풍수적으로 볼 때 썩 좋은 산은 아니 것 같은데 여기저기 묘가 상당히 많네요. 벌초나 성묘하려고 오르려면 고생 좀 하겠습니다.
주 4일 근무중인 부산 월요 산악회...
우렁찬 물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백암폭포가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바위 아래에 새들이 서식한다고 해서 새터바위...
새터바위에 올라 계곡을 내려다보니 쭉쭉 뻗은 금강송이 늠름한 기상을 한껏 뽐내고 있습니다.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높이 30m 2단 콤보 백암폭포...
겨울 폭설에 소나무가 부러졌습니다.
시간당 4mm 남짓 내린다는 비가 억수로 퍼붓네요. 이 사진 찍고 나서 바로 핸드폰 먹통...
오후 1시 20분 하산 완료... 왕복 3시간 40분 걸렸네요. 10분 더 늦었더라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될뻔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법전면에 들러 막걸리 몇 병 샀습니다. 양조장에선 10병 단위로 판다는... 약은 약국에 술은 양조장에서...
마흔일곱 번째 맞이하는 봄... 이제는 속물이 되어 그 흔한 풍경이 지겨울 때도 되었지만 힘차게 움 트는 생명력이 닳고 닳아 이제는 무뎌진 중년의 감성을 깨우고 곧 지천을 뒤덮을 꽃을 생각하니 봄바람에 녹은 처녀 가슴처럼 마냥 설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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