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유학산을 다녀왔습니다. 높이 839m 유학산은 칠곡군 동명면과 가산면 사이에 동·서로 길게 자리 잡은 아담한 산으로 6·25전쟁 중에는 다부동 전투가 벌어진 격전지로서 산 남쪽 다부리에 다부동 전승기념관과 기념비가 있습니다.
그동안 GPS 트랙을 기록하기 위해 Runkeeper 앱을 사용했지만, 다들 Tranggle 앱이 더 좋다고 해서 써 봤는데 영 별로네요. 중간에 한 시간 정도 기록이 날아간 부분이 있습니다.
10시 다부 IC 근처에 차를 세워 두고 본격적으로 산을 오릅니다.
중앙고속도를 내달리는 차량 소음이 장난이 아닙니다.
요 며칠 초여름 날씨였는데 오늘은 그저께 내린 비 때문에 선선하고 하늘이 무척 맑고 푸르네요.
잎이 나기 전 꽃이 먼저 피는 진달래도 이제 여린 싹을 틔우는군요.
한 시간 남짓 약간 가파른 길을 오르니 완만한 능선이 나타납니다.
누군가가 빈 도시락을 얌전히 걸어두고 갔군요.
화무십일홍...
6·25전쟁 당시 왜관과 다부동을 잇는 방어선은 낙동강 전선의 교두보이자 대구를 방어하는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국군 제1사단이 학도병 500여 명을 포함, 7,600여 명의 병력으로 이 지역을 방어하고 있을 때 북한군은 3개 사단 약 21,500명의 병력과 T-34 탱크 20대 각종 화기 670문으로 필사적인 공격을 해 왔습니다.
8월 1일부터 9월 22일까지 55일간 전투로 고지의 주인이 9번이나 바뀌고 아군 10,000여 명과 적군 17,500여 명 유엔군 약 3,000여 명이 희생된 치열한 전투를 치른 곳입니다.
햇수로 64년 전 서로 다른 이념과 신념으로 인해 수많은 안타까운 목숨이 숨져간 이곳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새싹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유학산을 유악산이라고도 한다는데 과연 능선에 올라서자 크고 작은 돌들이 널려있습니다.
839고지에도 다부 전투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비목이라도 세워 지나는 이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에게 감사의 묵념이라도 올릴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끝자락이 보이는 걸보니 정상이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유학산 정상에 서 있는 정자가 보이네요.
산위에 올라 발아래 세상을 내려다봅니다.
무인 산불 감시탑... 세상은 좋아졌고 그만큼 일자리는 줄었습니다.
2시간 만에 유학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중년의 남자 무릎에 여자가 앉아 낯 뜨거운 애정 행각을 벌이고 있네요. 몇 번이나 인기척을 냈는데 서로에게 너무 열중해서 못 들었는지 내가 정자에 올라서니 황급히 떨어지네요.
금오산입니다. 맑은 날엔 와불상이 선명하게 보이고 비슬산, 가야산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잠시 좋았던 하늘이 금방 뿌옇게 흐려지네요.
공룡의 등뼈처럼 뻣은 산이 팔공산입니다.
도봉사를 둘러보고 돌아올 것인지 아니면 도봉사에서 국도를 따라 출발지로 갈 건지 고민은 내려가서 하기로 하고 일단 도봉사로 내려갑니다.
인적 없는 곳에 숨어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들으며 도시락 까먹고... 따끈한 커피 한잔 마시며 잠시 쉬다가...
동화사의 말사인 도봉사에 도착했습니다. 둘러볼까 하다가 요즘 종교인들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어 패쓰...
핸드폰에 양희은의 "햐얀 목련"이 저장되어 있던가?
산 아래 벚꽃은 희디흰 꽃잎을 뚝뚝 떨구고 있는데 여긴 Ready~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내려와 국도를 따라 출발지로 가기로 결정... 무릎팍 시리고 발목 아픈 시멘트 길을 걸어갑니다.
팥재 휴게소 도착...
팥재에서 다부 IC까지 거리가 꽤 되네요.
4km 정도 되지 않을까 했는데 나중에 GPS 트랙을 살펴보니 6km였습니다.
다부와 칠곡을 잇는 도로는 지나는 차량이 적어 다소 한산합니다.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으면 미련이 남아 다시 부활 하려고 하는 걸까요? 아들아 아버진 이승에 미련 없다. 내가 죽으면 부활하지 않도록 태워서 단양 황장산과 도락산, 소백산에 골고루 나눠 뿌려다오.
선선하던 날씨가 오후가 되니 포근해지네요.
길가에 복사꽃이 탐스럽게 폈습니다. 역시 이 길로 오기를 잘했어...
다부와 칠곡을 잇는 길이 다부·왜관 간 도로와 합류하는군요.
근처에 채석장과 도로 공사현장이 있어 각종 덤프트럭이 1분에 한 번꼴로 한 번에 서너 대씩 열을 지어서 다닙니다. 갓길이 좁아 어깨넓이 옆에 골재를 가득실은 25톤 덤프트럭이 질주하는 상황은 공포와 충격 그 자체입니다. 이런 살벌한 느낌은 예전 자전거를 타고 1.7km 노루재 터널을 통과할 때 느껴보고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가 되었는데 트럭이 굉음을 울리며 지나갈 때마다 염통이 쫄깃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리네요.
벌써 자두나무 꽃이 폈군요.
이용객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이곳에 요즘 유행하는 무인 모텔이 몇 개 보이네요.
출발한지 3시간 55분 만에 출발지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가볍게 11km를 걸었습니다.
일찍 집에 가 봤자 할 일이 없으니 근처에 있는 다부동 전승기념관을 둘러봅니다.
입구 오른쪽에 다부동 전투로 전사한 군인과 학도병의 이름과 계급을 적어 놓은 비석이 서 있습니다.
야외에는 비행기, 탱크, 포 등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쌍발 제트엔진을 장착한 T-37C 2인승 훈련기... 크기가 아담하다 못해 앙증맞네요.
6·25전쟁 중에 우리 군은 탱크가 한 대도 없어 지축을 흔들며 달려오는 북한의 소련제 T-34 탱크는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북한이 단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무기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외계인 기술로 만들었다는 독일 타이거 탱크를 상대로 기술적 열세를 수적 강세로 물리친 T-34 탱크의 당시 생산 대수는 무려 35,000대... 아쉽게도 T-34 탱크는 전시된 게 없네요.
70년대 초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미군의 주력 전차였던 M60 A3 전차...
짜리 몽땅하게 생긴 F-86F 세이버 전투기... 6·25전쟁 때 소련의 MIG-15를 많이 격추시킨 전투기로 유명한데 당시 제트엔진의 독특한 소음 때문에 쌕쌕이라 불렀습니다.
각 종 야전포들...
실내 전시실로 입장... 북한군이 사용하던 소련제 PPSh 41 기관단총... 둥근 탄창이 '똬리’와 닮았다고 해서 따발총이라고 더 알려졌습니다.
예비군 훈련 때 사격한 총 대부분이 바로 M1 카빈 소총이었는데 사격할 때마다 꿩 잡으러 다 날아가고 표적엔 겨우 몇 발만 맞았던 무진장 안 맞은 기억이...
미제 M-79 유탄 발사기... 정식 발음은 "에무칠구 유탄 발사기"... 예비군 훈련 때 당나라 야비군이 얼떨결에 쏜 유탄이 우리가 교육받던 훈련장에 떨어져 다들 혼비백산하여 흩어졌는데 다행히 훈련용 유탄... 예비군 중대장이 제일 먼저 도망가더라는...
STEN-MK2 영국제 기관단총...
군 보직 중 가장 빡쎄다는 81mmm 똥포... 정식 명칭은 M29A1 박격포...
미군이 사용하던 M1 소총... 예비군 민방위 다 지난 중년의 아저씨가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밀리터리 얘기를 자꾸 해서 신빙성이 없을 듯 하지만 예비군 훈련 때 쏴본 기억으로는 반동은 심했지만 상당히 잘 맞았던 기억이...
5월까지 산불예방 차원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산이 많아 어렵게 선정해 다녀온 유학산... 힘든 구간이 없어 산책 삼아 다녀오기 딱 좋은 난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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