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싸이클과 열애에 빠져 오랫동안 산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여 오늘은 싸이클의 끈적한 유혹을 뿌리치고 산을 찾았습니다. 오늘 오를 삼악산은 세 개의 큰 봉우리로 이루어져 삼악산이라 합니다. 산이 높거나 크지는 않으나 오대산의 웅장함과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축소한 듯한 아기자기한 산으로 정상에 올라서면 의암호와 호반의 도시 춘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림 같이 아름다운 조망을 즐길 수 있습니다.
산행 시작은 의암 매표소나 등선폭포 매표소에서 시작되는데 의암 매표소 주위를 몇 번이나 돌아봐도 차를 댈 곳이 없어 등선폭포 매표소 근처 유료 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주차료 2,000원은 매우 납득이 가는 금액입니다.
무슨 명분으로 입장료를 받는지 모르겠지만, 입장료 1,600원을 내고 나니 160,000원 강탈당한 기분이 드네요.
막국수, 닭갈비... 이런 메뉴를 보니 여기가 춘천이 맞네요.
미로 같이 얽힌 골목을 지나 산에 들어섭니다.
나는 해발 1,000m 미만인 산은 등산으로 치지 않는데 예외가 바로 산 이름에 "악"자가 들어가거나 출발지 근처에 강 또는 바다가 있으면 일단 긴장을 합니다. 왜냐하면, "악"자가 들어간 산은 오르기 험한 산이고 출발지가 강이나 바다 근처라면 해발이 100m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산이 낮아도 올라야 하는 높이가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전체 이동 거리가 9km라고 기록되었는데 아마 오류인 것 같고 약 6km쯤 될 것 같습니다. 3시간 23분 걸렸습니다. 등선폭포를 출발 정상을 오른 후 삼악산장 매표소로 하산했으며 도로를 따라 출발지로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에 산을 찾았더니 이름 모를 새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축가를 부르고 꼬리가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잠자리들이 날아와 축하비행을 하는군요. 나도 덩달아 기분이 막 좋아져 전두엽이 찌릿찌릿해지기 시작합니다.
오랜 가뭄에 수량은 적지만, 맑은 계곡 물엔 피라미들이 여유롭습니다.
등선폭포입니다. 계곡 물이 적어 섭섭하네요.
등산로는 비교적 잘 조정되어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다녀간 흔적을 남깁니다. 창조경제를 위하여...
정상적인 부부가 등산하는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남자는 앞서고 여자는 쫄래쫄래 뒤따르고...
담백하게 지져낸 배추 전에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이 생각납니다.
모든 것을 이고 지고 날라야 하니 이해는 되지만, 납득은 안 되는 가격입니다.
개시무룩...
흥국사 대웅전입니다. 흥국사는 894년경 궁예가 창건한 사찰이랍니다. 이곳은 궁예가 왕건을 맞아 싸운 곳으로, 궁예는 이곳 터가 함지박처럼 넓으므로 궁궐을 지었다고 네이버 지식백과가 알려줬습니다.
흥국사를 지나니 본격적으로 가파른 등산이 시작됩니다.
산에서 점심은 항상 정상을 오른 후 먹는데 오늘은 어젯밤 늦게까지 노느라 늦잠을 자 출발이 늦었습니다. 집사람이 매우 고마운 점심을 챙겼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어마 무지 가파른 돌계단이 기다립니다.
정말 333개가 맞는지 세다 중간중간 오가는 등산객과 인사를 하느라 그만 까먹었네요.
333개 돌계단을 지나면 너른 평지가 나타납니다.
오늘 전국 산악회가 전부 삼악산에 모였군요. 온갖 반찬 냄새에 속이 울렁거립니다. 여기저기서 "위하여"를 연발합니다. 인생 뭐 있어 먹고 마시고 즐기는 거지...
너른 평지를 지나면 이내 가팔라집니다.
드디어 삼악산 세 봉우리 중 가장 높은 봉우리인 용화봉에 올랐습니다.
한사람이 찍어 카톡으로 날리면 될걸. 각자 자기 폰으로 찍어대는 통에 한 10분 기다리는데 뚜껑이 열릴뻔했습니다.
점심시간 포함 1시간 40분 걸렸습니다.
백만 년 만에 날씨가 화창해 그림 같은 멋진 조망이 펼쳐집니다.
쌓은 덕이라곤 코딱지만큼도 없는데 이런 훌륭한 조망을 보여 주니 황송하기 그지없네요.
춘천이 왜 호반의 도신지, 춘천을 왜 호반의 도시라 하는지, 어디 물어볼 필요가 없네요. 그냥 시원시원한 조망에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 봅니다.
가운데 회색 부분이 소양강 댐입니다.
붕어섬을 붕어 모양으로 예쁘게 장식한 것이 비닐하우스인 줄 알았는데 태양광 발전시설이군요. 붕어섬 상류에 길게 늘어선 섬은 원래 하나였는데 가운데 수로를 내고 다리를 놓아 상중도와 하중도로 나눴다고 합니다.
시인 류근은 춘천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춘천은 겨울을 앓는 사람에게
좋은 계절(?)이다.
그래서 나는 춘천에 간다.
옛날 애인이 없는 도시,
추억만 고드름처럼 찬란한 도시,
처연한 도시,
가난이 조금 위안이 되는 도시,
막막한 도시,
막막한 청춘이 떠돌던 도시....
나는 슬퍼서 춘천에 간다.
혼자 가만히 울고 싶어서 춘천에 간다.
혼자서 더 캄캄하게 울고 싶어 춘천에 간다.
대학 다닐 때 예쁜 여자친구 손을 잡고가 아니라 노화도 촌놈 진열이 황간 촌놈 기열이 이런 촌놈과 경춘선을 타고 춘천에 와 온종일 여빌빌 저빌빌 돌아다니다가 밤늦게 청량리역에 도착해 역 근처 포장마차에서 까치 담배를 빨아대며 마신 소주 몇 잔에 취해 국철 1호선이 수원에 도착하도록 퍼질러 잤던 기억납니다. 당시 절박함이 나중에 추억이 될 줄 몰랐는데 다시 생각하니 젊었을 때나 해 볼 수 있는 객기이자 호기였습니다.
역시 오늘 여기 오기를 잘했어.
이제 의암댐으로 내려갑니다.
9월의 하늘은 눈이 시리게 푸르고 푸르다 못해 차라리 슬퍼집니다.
의암댐에서 삼악산을 오르는 코스는 단 1m의 평지 없이 그냥 사정없이 가파르네요.
춘천의 소나무는 그 기상이 늠름해 하늘을 찌를듯합니다.
멀리 의암댐이 보이는군요.
가죽점퍼에 쫄바지 입고 쇠사슬 좀 두르고 BMW 투어링 오토바이 타고 호젓한 호반의 도로를 달려보는 달콤한 꿈에 잠시 젖어봅니다.
어느새 다 내려왔습니다. 아침에 주차문제로 약간 기분이 상했던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게 생긴 매표소 직원도 일광욕으로 비타민 D를 공급받는군요.
거의 세시간 걸렸습니다.
도로를 따라 차를 세워 둔 등선폭포 주차장을 찾아갑니다.
수련인가?
다 아시겠지만, 의암댐은 수력발전을 위한 댐입니다.
아침·저녁으론 쌀쌀하지만, 아직 한낮 햇살은 까슬까슬하네요.
삼악산입니다.
아침에 그 많던 차들이 다 빠지고 내 차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그동안 너무 힘든 산만 골라 먼 거리를 미친듯이 돌아다녔으니 이제부턴 소중한 내 도가니를 위해서 서너 시간 정도 되는 코스만 골라 다녀야겠습니다. 오랜만에 아들이 내려왔으니 오늘은 치킨을 먹을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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