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마지막 휴일 짙어가는 가을 손짓에 이끌려 속리산을 찾았습니다. 그동안 전국을 우울하게 덮었던 미세먼지도 걷히고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에 수많은 산악회와 등산객이 타고 온 차량으로 주차장은 물론 갓길도 차들로 꽉 찼습니다. 주차할 곳이 없어 이리저리 헤매다가 점심을 먹는 조건으로 식당 주차장 구석에 겨우 차를 세웠습니다.
우리나라 등산복은 단풍보다 더 화려합니다.
오늘 전국의 산악회가 다 속리산에 온 듯...
지체와 정체, 고성방가로 뚜껑이 열리는 걸 억지로 참았습니다.
아~
단풍이 화려하지 않았으면...
햇볕이 따스하지 않았으면...
볼을 스치는 바람이 부드럽지 않았으면...
수많은 인파에 짜증만 남았을 듯...
오전 10시 전인데 벌써 여기저기서 술판이 벌어집니다.
오늘은 집사람이 따라 왔습니다. 속리산이 겨우 1,000m 조금 넘는 해발이고 동네 뒷산 오르는 수준이라고 꼬셔 데리고 왔는데 오르는 내내 도끼눈을 뜨고 골을 내는 바람에 조금만 힘든 기미를 보이면 쉬어 가느라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문장대가 가까워지자 슬슬 속리산 특유의 독특한 풍광이 펼쳐집니다.
오랜 가뭄으로 계곡 물은 말라버렸네요.
수년 동안 산을 올랐지만, 이런 엄청난 인파는 처음 봅니다. 여기가 산인지 도떼기시장인지 황금연휴의 인천공항인지...
문장대를 오르기 위해서는 1시간 넘게 줄을 서야 한다는군요. 나는 그동안 몇 번이나 문장대를 올랐기에 고마 포기합니다.
어마무시한 등산객 사이를 뚫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 찍는 사이 집사람과 헤어져 한참을 힘들게 헤맨 끝에 상봉했습니다. 하마터면 생이별할 뻔했네요.
공룡의 등뼈처럼 날카로운 속리산 능선을 따라 뾰족히 솟은 신선대와 멀리 천왕봉이 뚜렷하고...
신선대 근처에 있는 매점도 어렴풋이 보이는군요.
문장대에서 속리산 주봉인 천왕봉까지는 약 3.5km... 내 걸음으로 약 2시간 정도 걸리는 먼 거리입니다.
계곡의 단풍은 이미 시들었지만, 정상의 단풍은 화려하지 않고 은은합니다.
힘들어 사색이 되었던 집사람 표정도 많이 밝아졌습니다.
문장대는 여전히 콩나물시루...
신선대까지가 목표였으나 어마무시한 인파에 질려 여기서 고마 포기하고 내려갑니다.
조릿대만 독야청청하고 이제 활엽수는 긴 겨울을 준비하네요.
그러나 산 아래 풍경은 아직 초가을입니다.
단풍은 여전히 강열하고...
때론 은은한 색으로 나를 설레게 합니다.
이렇게 내 마음의 책갈피에 마흔 여덟 번째 슬픈 단풍을 담네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기...
얽매이지 말기...
구속하지 않기...
집착하지 말기...
돌아오는 길 농암천에 꺽지가 많이 낚인다는 소식에 수년째 트렁크에 고이 모셔둔 낚싯대를 던져 봤습니다.
씨알이 작은 꺽지가 낚이네요. 방생...
가을은 매년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내가 맞이 하는 가을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그래서 늘 설레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단풍을 따라 훌쩍 떠나고 싶어지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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