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가산을 오르기 위해 북절골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오를 코스는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경로라 마을회관 마당에 차를 세워 두고 마을 주민에게 슬쩍 내가 오를 코스가 어떠냐고 물어봅니다. 그랬더니 내가 알고 있는 코스는 없고 송이 채취를 위해 다니는 길이 있으니 그 길을 친절히 알려 주십니다.
마을 주민께 등산 코스를 물어보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등산 코스가 확실한지 알 수 있고 또 하나는 어떤 이유로 산에서 못 내려올 경우 다음날 아침까지 차가 서 있으면 주민은 내가 산에서 못 내려 왔다는 것을 알고 119나 경찰에 신고를 할 것이고 내가 오른 경로를 알 수 있으니 구조하기가 싶다는 것입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어야 하지만...
학가산은 D 코스를 따라 정상 부근까지 차로 오를 수 있으며 정식 등산로는 E 코스나 F 코스입니다. 네이버 등산지도를 보면 A, B, C 코스가 표시되어 있지만, 절대 이 코스로 올라서는 안됩니다. A와 B 코스 사이에 마을 주민이 송이버섯 채취를 위해 다니는 길은 있으나 절대 등산로는 아닙니다. 어쩌튼 나는 A 코스로 올랐고 C 코스로 내려 오기로 계획했으나 A 코스를 오르던 도중 A와 B 코스 사이에 나있는 길을 발견하고 그 길로 하산하기로 했지만, 갈림길을 지나쳐 엄청난 고생을 했습니다.
마을을 벗어나면 시멘트 농로가 직선 방향으로는 좁게, 오른쪽 방향으로는 넓게 갈라지는데 여기서 결정적으로 실수를 합니다. 직선으로 올라야 하는데 네이버 등산지도를 보니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나있어 망설임 없이 오른쪽 농로를 선택했습니다.
한참 농로를 따라 오르니 또 갈림길이 나타나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진입했는데...
보시다시피 길이 없습니다. 깜빡 잊고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댔더니 배터리가 쑥쑥 빠지네요. 어젯밤 충전을 못해 배터리도 충분치 않는데...
네이버 지도를 보니 역시나 등산로에서 많이 벗어났습니다.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네요. 마을 끝에서 직진 했어야 했는데...
다시 좀 전의 갈림길로 내려와 다른 길로 오르니 오래되긴 했지만, 등산객이 매어 놓은 빛바랜 리본이 보입니다.
군데군데 노란 리본이 매여 있어 리본을 찾아 올라갑니다.
그러나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행인 것은 숲이 우거지지 않아 대충 방향을 가늠할 수 있어 오르는데 어려움은 없습니다.
길을 잃을만하면 어김없이 리본이 방향을 잡아 줍니다.
길 없는 숲을 한참치고 오르니 다시 길이 보였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됩니다.
권순석씨가 누군지 모르지만, 매어 놓은 노란 리본이 능선까지 길을 안내합니다.
너무 고마워 문자를 보냈더니 전화를 주셔서 한참 수다를 떨었습니다.
핸드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하고 보조배터리는 충전해 놓은 지 며칠 지났다고 방전되어 버렸네요. 슬쩍 불안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도 리본이 계속 길을 안내하니 리본만 따라 오르면 금방 능선에 올라서겠지...
능선 부근까지 오르는데 길은 전혀 없습니다.
리본도 띄엄띄엄 매여 있어 길 찾기가 쉽지 않네요.
게다가 낙엽은 발목까지 쌓여 어찌나 미끄러운지...
위태롭게 놓인 바위를 지나자...
능선에 올라서고 활엽수에 겨우살이가 군락을 이루며 기생하고 있습니다.
빨간색 화살표 방향으로 올랐고 겨우살이 군락지를 조금 지나자 뚜렷한 갈림길이 나타납니다. 아마 마을 주민이 말해준 코스 같은데 검은색 원으로 칠해진 경로입니다. 정상을 올랐다가 여기로 돌아와 검은색 원 경로를 따라 하산하기로 하고 나뭇가지로 표시를 해 뒀습니다. 그러나 표시를 못보고 지나쳐 엄청난 고생을 했습니다.
멀리 학가산 정상이 보입니다. 여기까지 1시간 30분 걸었는데 아직 30분은 더 올라야 할 듯...
정상 능성이 가까워지자 크고 작은 돌더미가 발걸음을 더디게 합니다.
어풍대에 올랐습니다.
학가산은 예천과 안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예천과 안동에서 각각 정상석을 세워놓았는데 국사봉 정상석은 예천에서 세운 것입니다.
국사봉을 조금 지나면 안동에서 세운 정상석이 놓여있는 큰 바위가 보입니다.
안동에서 세운 정상석도 해발이 882m 표시되어 있으나 느낌상 예천 정상석보다는 조금 낮은 것 같습니다.
정상 부근에는 TV 중계소 및 통신 기지가 경치 좋은 곳을 다 차지했습니다.
오늘도 조망이 좋지 못하네요.
천주 마을 방향입니다. 학가산은 광흥사를 출발 천주 마을을 지나 당재나 애련사 방향으로 오를 수 있으며 이 경로가 정식 등산로입니다.
지나온 능선입니다.
석탑사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다시 어풍대로 돌아왔습니다.
대충 점심을 해결합니다.
두어 시간 후면 엄청난 고난이 닥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끝없이 겹쳐진 능선을 바라보니 마음은 푸근해지네요.
내가 스틱 같은 장비를 웬만해서는 사용하지 않는데 낙엽이 매우 미끄러워 오랜만에 스틱을 꺼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니 기온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비도 살짝 내리고... 등산의 기본은 더울 땐 벗고 추울 땐 껴입는 것...
산꼭대기에 기와 조각이 널려 있다는 건...
예전 산성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한참을 내려가다 주위를 살펴보니 길이 아닌 것 같아...
다시 한 바퀴를 돌았는데 아까 기와 사진을 찍은 자리로 돌아왔네요.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핸드폰 사망...
오를 때는 그렇게 멀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능선을 따라 길은 계속 이어지고 걸어도 걸어도 갈림길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오를 때 표시해 둔 갈림길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 것 같습니다. 내가 방향감각이 뛰어나고 눈썰미와 기억력이 좋아 웬만해서는 길을 잃지 않고 길을 잃어도 금방 알아채는데 오늘은 뭔가 조짐이 수상합니다. 핸드폰이 켜져 있으면 현재 위치를 알 수 있어 바로 길을 찾을 수 있는데 핸드폰이 꺼졌으니 위치는커녕 시간조차 알 수 없습니다.
1시쯤 하산을 시작했으니 지금 시각이 대충 3시는 넘은 것 같은데 내려갈수록 길은 점점 더 험해지고 앞에는 엄청나게 높은 산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지만, 내려다보니 도저히 마을로 내려갈 수 없다고 판단, 다시 내려왔던 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오르다가 가만히 생각하니 지금 갈림길까지 올라가려면 적어도 2시간, 갈림길에서 마을로 하산하는데 또 1시간, 5시 넘으면 해가 지니 최악의 순간 깜깜한 밤에 길을 잃을 수 있으니 다시 발길을 돌려 내려갑니다. 내려가다 보면 뭐가 나와도 나오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내려가다가 이게 아닌 것 같아 오르고 또 아닌 것 같아 내려가고... 몇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치고...
산속이라 해가 빨리 집니다. 슬슬 주위는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근처에서 개 짓는 소리와 연속으로 총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 사냥꾼이 사냥을 하는 것 같은데 점점 불안해집니다. 혹시 사냥꾼이 나를 짐승으로 오인하지 않도록 스틱을 두드리기도 하고 헛기침을 하면서 조심조심 내려가는데 갑자기 앞에서 송아지만 한 산돼지가 달려와 내 곁을 스치듯 도망을 치고 놀란 가슴을 추스르기도 전에 이번엔 멀리서 나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사냥꾼이 보입니다. 나도 놀라고 사냥꾼도 놀라고 사냥꾼을 따라온 사냥개도 개 놀라고...
다행히 사냥꾼이 나를 먼저 발견하고 다가와서는 총을 겨눠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합니다. 그러면서 오늘부터 경북 북부지방에 수렵이 허가되었으니 정식 등산로만 이용하고 이런 길을 위험하니 절대 다니지 말라며 충고를 하십니다. 내가 내려가는 길을 찾지못해 해메고 있다고 하자 그는 사냥개를 불러 앞장을 서시네요.
사냥꾼 덕분에 무사히 산에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차를 세워둔 북절골까지 태워주셔서 편하게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동네 주민이 송이 채취를 위해 야영한 곳에 비닐과 천막이 있어 최악의 순간 산에서 하룻밤 노숙할 각오를 하고 그곳부터 걸음을 세가면 걸었는데 이분 덕분에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전화번호라도 알아둘 걸 지치고 경황이 없어 물어보지 못 했네요. 이 글을 보실리 만무하겠지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핸드폰 충전을 하면서 시간을 확인하니 4시 23분, 8시 30분에 등산을 시작했으니 거의 8시간을 걸었네요.
무사히 집에 돌아와 지나온 경로를 살펴보니 어마 무지 걸었습니다. 빨간 화살표가 오른 경로 파란 화살표가 내려온 경로입니다. 검은색 원은 마을 주민이 알려준 경로입니다. 이 글을 읽고 나도 한번 가 봐야겠다는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시면 애시당초 접으시기 바랍니다. 마을 주민이 알려준 경로조차 오를 생각 마십시오. 물론 석탑사에서 정상까지 등산로는 뚜렷하고 그렇게 힘들지 않지만, 7km 가까운 먼 거리고 결정적으로 지금은 수렵기간이라 잘못하면 비명횡사할 수 있습니다.
어릴적 큰댁에 심부름 갔다가 죽을 고비를 넘겼고 3 년 전 단양군 덕절산에서 길을 잃어 헤맬 때 송이 채취를 하던 분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산에서 내려올 수 있었는데 오늘도 사냥꾼의 도움을 받아 최악의 순간을 모면했습니다. 이제 내게 주어진 3장의 행운을 모두 사용했으니 앞으로는 무모한 등산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굳게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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